호르무즈 봉쇄인데 유가가 안 오르는 이유
1일 전
호르무즈 해협이 거의 반년째 사실상 개방되지 않았는데도 유가가 3월 당시보다 낮은 이유가 궁금할 수 있음.
호르무즈에서 하루 1,500만~1,700만 배럴이 사라졌다면 유가가 당장 배럴당 150달러까지 올라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여러 완충 장치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음.
전쟁 전 호르무즈 해협 통과 물량은 하루 약 2,160만 배럴이었지만 2분기에는 평균 490만 배럴 수준까지 급감했음. 최근에도 관측 물량은 대략 하루 400만~600만 배럴 수준이라 여전히 심각하게 제한된 상태임.
그런데 모든 물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님. 사우디아라비아는 동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홍해 쪽 얀부항으로 물량을 우회시키고 있고, 이집트의 SUMED 파이프라인도 대체 경로 역할을 하고 있음. 미국·캐나다·가이아나 등 비OPEC 국가의 생산 증가도 하루 약 140만 배럴 정도의 완충 역할을 하고 있음.
수요가 줄어든 것도 중요함. 높은 유가와 전쟁 충격이 이어지면서 석유 소비 자체가 둔화됐고, IEA는 올해 세계 석유 수요가 평균 하루 16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음.
결국 공급이 크게 줄었지만, 우회 수송과 다른 지역의 증산, 수요 감소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유가가 3월 수준보다 낮게 유지되고 있는 것임.
다만 여기서 안심하면 안 됨. 진짜 위험한 시점은 재고가 완전히 0이 되는 날이 아님. 재고가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가면 정유사와 트레이더들이 앞으로 물량을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판단하고 현물 확보 경쟁에 들어감. 실제 고갈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가격이 비선형적으로 튈 수 있다는 뜻임.
이미 그런 징후도 나타나고 있음. 원유 가격보다 디젤 등 석유제품의 현물 가격과 정제마진이 훨씬 강하게 오르고 있음. Reuters 역시 현재 원유의 물리적 시장이 상당히 타이트하다고 평가하고 있음.
그래서 지금 유가가 낮다는 사실만으로 공급 충격이 약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움. 시장이 아직은 우회 수송, 대체 생산, 수요 감소, 재고 방출로 버티고 있을 뿐이고, 이 완충 장치 중 하나라도 약해지면 원유 가격보다 정유제품 가격이 먼저 급등하면서 충격이 나타날 가능성이 큼.
이번 사태의 핵심은 ‘당장 유가가 얼마냐’가 아니라 ‘시장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느냐’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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