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제약사는 비싸게 산다
1개월 전
제약 M&A의 핵심은 절대 배고픈 상태로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는 것입니다.
식사를 거른 채 마트에 들어가면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모두 사고 싶어집니다. 제약회사 경영진도 비슷합니다.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 만료가 다가오고, 이를 대체할 신약 파이프라인이 부족해지면 모든 바이오 기업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때부터입니다. 절박함이 커질수록 비싼 가격에, 검증이 덜 된 자산을 사들일 가능성도 커집니다.
과거 제약업계는 특허 절벽을 대규모 인수합병으로 넘으려 했습니다. 규모를 키우고 중복 비용을 줄이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하지만 대형 거래는 막대한 통합 비용과 실행 위험을 동반합니다. 셀진 인수 사례처럼 거래 규모가 크다고 해서 장기적인 주주가치까지 보장되는 것도 아닙니다.
최근 시장이 ‘볼트온 거래’를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 번에 회사의 운명을 걸기보다, 검증된 자산을 소규모 또는 중규모로 꾸준히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릴리는 비만 치료제에서 나오는 풍부한 현금흐름과 긴 특허 보호 기간을 바탕으로 수면, 유전자 편집, 항암제, 환각제 등 다양한 분야에 시간 여유를 두고 투자하고 있습니다. 실패하더라도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는 체력이 있는 것입니다.
머크의 전략도 참고할 만합니다. 액셀러론과 프로메테우스를 인수하며 급성장 가능성이 있는 자산을 선별적으로 확보했습니다. 초기 연구에서 가능성이 확인됐지만, 후기 임상 결과가 나오기 전인 시점을 공략한 것입니다. 위험은 남아 있지만, 대형 인수 한 번에 모든 것을 거는 것보다 훨씬 통제된 접근입니다.
결국 최고의 M&A는 가장 급할 때 체결되는 거래가 아닙니다. 약물의 가치는 어느 정도 입증됐고, 가격에는 아직 성공 가능성의 전부가 반영되지 않은 시점에 이루어지는 거래입니다.
제약회사도 투자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특허 절벽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계속 사는 것이 아니라, 배고픔 때문에 아무것이나 사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미리 확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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